아..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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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사실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며칠동안 계속 잠을 설쳐서 오랜만에 푹 잘수 있겠거니
했건만 잠깐 머리가 베개 밑으루 툭 떨어지는가 싶더니 또 깨버리곤..
후,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또 밤을 버텨내야 겠구나
그야 말루 공포 그자체.
쳇,피할수 없을 땐 즐기자.
따스한 우유가 숙면에 좋다하니 역공법으로 나갈것.
찐한 커피를 머그잔에 가득 채우고 의자에 턱 걸쳐 앉으니
어느샌가 어둠에 눈이 익은 한마리 고양이처럼 아늑하다.
그것도 잠시..
점점 온몸의
털이 날을 세우고 바싹 긴장한 틈으로 하루종일 괴롭히던 상념들이
또렷해진다.
곧이어 영사기로 돌리는 영화 처럼 방안 구석 벽면에 한가지 장면이
펼쳐지는데 그 투영되는 빛 사이로 삭히지 못했던 갈등들도 뒤범벅이
되고..나도 몰래 아이 드러워..소리가 입밖으로 새어 나온다.
저런것들이 내 맘속에서 진공 청소기 속처럼 빨아 들여진 채로 뭉쳐져
있으니 밤이..더이상 내게 안락한 그런밤이 아니었구나.
정말 재미없는 부분들이 끊임없이 리와인드 되면서 안그래도 석연찮은
나의 내면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풀썩거리는 저 먼지들, 점점 힘이 빠지며 대항할 힘조차 없는 상실감에
눈물 조차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구차하게 저항하지 않는 내 모습이 대견하다.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코를 막고
하루종일 열려 있었던 바깥세계와의 통신경로였던 것들을
모조리 손가락으로 막고 되뇌어 보는거다
괜.찮.아....괜.찮.아.질.꺼.야...
아직도 이른 새벽인데 무슨 결박에서 풀려나온 사람처럼
왜 이리 감격스럽고 한편으론 어찌나 허무한지
극단적인 감정이지만 뭐라 형언할 순 없다.
내 자신을 놔주고 잠시 의자에 기대앉았는데 환청처럼 새소리가
들렸는가 싶더니 조용히 안기는 아이가 가슴을 더듬는다.
엄마...잘 잤어?
웅.....잘 잤어.
그 불면의 밤들과 부딪히며 살아온 일상들이 아침마다 괜찮아지고
용서 되는 이유와 까닭은
바로 내 아이의 존재가 아닐까..
피투성이가 되서 돌아온 전사는 아니지만 그만큼 만만챦은 삶의 질곡속에서
견뎌내며 다시 돌아와 안아주어야만 하는 내 마지막 딜레마..

웅...아이야..잘.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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